지난 5월 8일,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32)가 제주 KBS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했다.
피켓에는 “KBS는 선거적폐 답습하려는가. 녹색당 고은영 도지사 후보 선거토론회 참가는 정당하다”고 쓰였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고 후보는 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관하는 토론회 초청 대상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고 후보는 5월 28일 열린 KBS의 지방선거 토론회에 참석했다.
■신세계에서 홈플러스, 서울시장 후보로
고 후보는 어떻게 토론회에 참석하게 됐을까.
여기에는 제주도의 각종 시민단체들과 도민들의 도움이 컸다.
제주 난개발을 반대하는 도민들은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유일한 후보를 TV 토론회에서 보지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KBS에 민원을 넣었다.
KBS는 시청자위원회 형식을 빌려 고 후보를 토론회에 초청했다.
이 과정에서 고 후보는 ‘검증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했다.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검증이 필수적인데 소수정당이나 정치신인의 경우, 검증을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후보자를 위해서가 아니다. 유권자들도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 고 후보는 몇 차례 TV 토론회 이후 자신을 대하는 도민들의 반응이 달라진 것을 체감한다.
고 후보가 선거 초반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생각보다 어리네” 등이었다. 젊은 여성인 탓에 외모 평가도 잦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2공항 백지화는 가능한지” “다른 모델의 관광산업은 어떤 것인지” 등의 질문을 더 많이 받는다. 고 후보는 “이런 반응을 통해 나는 충분히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선택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동안 검증받을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고 후보의 슬로건은 ‘제주를 지켜라 녹색바람’이다.
필리핀 보라카이 섬이 폐쇄됐을 당시 제주 곳곳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제주의 관광산업 역시 포화상태라는 것이다.
고 후보는 “지금이야말로 녹색의 가치가 가장 빛날 때”라며 “제주의 관광산업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사람이 많이 와서 100원씩 쓰는 모델이 아니라, 제주 생태계와 거주민들을 위해서 사람이 적게 와도 1000원씩 쓰는 모델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숙 민중당 서울시장 후보(39)의 첫 직장은 신세계백화점이었다. 백화점에서 일했지만 소속은 파견업체였다.
김 후보가 일했던 백화점 화장품 코너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몸은 망가지는 곳이었다.
주6일 노동이 기본이었고 7㎝ 이상의 구두를 신어야 했다. 그 구두를 신고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을 화장품 매대와 매대 사이에 서 있어야 했다.
6개월 반에 몸무게 10㎏이 빠졌다.
다음 직장은 홈플러스였다. 홈플러스 정규직이 아니던 입사 초기, 어린 노동자들은 매장 관리자에게 수차례 욕설을 들었다.
호소할 곳 없었던 이들은 각각 당한 내용을 진술서로 써서 점장에게 제출했다. 그게 김 후보가 한 직접행동의 출발점이었다.
김 후보는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행동하면 바뀐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김 후보는 홈플러스 영등포 매장 소속이다.
당시 경험은 홈플러스 노동조합 설립으로 이어졌다.
김 후보는 “단체협약은 우리가 일하는 현장의 법을 만드는 것이었다”며 “그 법으로 인해 심지어 우리가 알지도 못했던 많은 권리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장기자와 지방정부, 다르지 않다”
김 후보는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의 서울시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하면서도 대다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은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김 후보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예로 들면서 “하지만 다수 노동자들은 마을공동체에 참여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조금이라도 더 일해야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며 “노동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체는 요원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 후보는 ‘노조할 권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자신이 노조를 통해 권리를 찾고 일상을 찾았듯이, 1000만 서울시민이 같은 경험을 하길 바란다.
김 후보는 “홈플러스 노동자가 서울시장에 출마했다고 하면 시민분들이 처음에는 낯설게 본다”며 “하지만 가족 중에 비정규직 없는 가정이 어디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교수, 변호사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우리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2009년 6월, 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60)가 회장실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관련 보도 직후였다. 보도와 관련한 독대는 처음이었다.
윤세영 당시 SBS 회장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추진 논리를 그대로 박 기자에게 주장했다.
하지만 박 기자는 독대 이후에도 경인운하 등의 기사를 계속 발제했다. 반 년 뒤 박 기자는 논설위원실로 발령 났다.
환경은 민감한 분야다.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와도 날을 세워야 한다. 박 기자는 2003년부터 SBS에서 환경전문기자를 맡아 활약했다.
지하철 먼지의 60~70% 이상이 금속성분이라는 보도는 스크린도어 전면 설치에 기여했다. 지난 2월, 그는 33년 4개월 기자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기자로만 남을 것 같았던 그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고양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소속은 정의당이다. 정년퇴임 이후의 삶에서 정치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새를 관찰하는 환경단체에서 활동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자신이 사는 고양시에서 미세먼지 문제와 관련해 싸우는 시민들을 만나게 됐다.
박 후보는 자연스레 그들과 함께하게 됐다. 그러다 올해 3월, 선거 출마를 결심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3월, 미세먼지와 관련해 시민들과 도의원이 만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 방송사 카메라가 간담회 자리에 나타나자 도의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렵게 마련한 간담회 자리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박 후보는 나가려는 도의원을 막아 섰다. 그 과정에서 박 후보의 옷이 뜯기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사회는 정치혐오가 심한 동시에 정치신인에게 가혹하다. 정치를 안해본 사람이 뭘 알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기자의 일과 정치인의 일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시민의 삶 속에 들어가서 보고 듣고, 이를 가치판단해서 정리한 다음 모두를 위해 변화를 일으킨다는 차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박 후보의 슬로건은 ‘환경경제도시’다. 환경과 경제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남 순천시가 대표적인 모범사례다. 순천시는 자연환경을 보전하면서도 이를 토대로 한 관광산업 등이 활성화되어 있다.
또 박 후보는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환경을 바탕으로 한 경제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골프장 건설은 일부만 이익을 보지만, 그 자리가 공원이라면 시민 모두가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정의당일까. 고양시는 지난 16년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출신 시장이 각각 8년씩 재임했다.
박 후보는 지난 17년 동안 고양시에 거주했다.
그는 “주말이면 자전거와 마티즈를 타고 곳곳을 다녔다”며 “16년 동안 고양시의 난개발은 멈추지 않았고 그 결과 시민들의 삶의 질은 떨어졌다.
이제는 바꾸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윤택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후보(39)는 7살 때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시각장애인 대부분이 그래도 빛은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강 후보는 빛도 보지 못한다.
그는 “빛을 볼 수 있으면 밤에 편의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점이 부럽다”며 웃었다.
그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발달장애나 지체장애 관련 단체들과도 폭넓게 소통해 왔다.
장애인 운동 진영에서 그를 시의원 후보로 추천한 이유다.
■“민주당 안에서도 소수자 목소리 들어야”
강 후보가 장애인 당사자 운동에 눈을 뜬 건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당시 몇몇 대학에서 장애인은 ‘특수교육과’에만 입학이 가능했다. 강 후보는 이 문제를 두고 학교와 충돌했다.
졸업 이후에는 시각장애인의 공무원시험 볼 권리와 관련한 활동을 했다.
당시에는 점자 시험지가 없었을 뿐 아니라 시각장애인은 원서조차 접수할 수 없었다. 접수 요건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강 후보는 항의 끝에 원서를 접수할 수 있었다. 담당자는 “원서를 접수해도 점자 시험지가 없어 시험은 볼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으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그래도 강 후보는 시험장에 갔다. 점자 시험지가 없어 앞만 멀뚱멀뚱 바라보는 시험이었다.
하지만 이후 공무원시험에 점자 시험지가 도입되는 등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민주당은 강 후보를 비례 8번에 배정했다.
사실상 당선권 밖이다. 당선권인 3번과 4번은 약사회와 한국노총 출신 후보가 받았다.
이를 두고 장애인계는 “보여주기식”이라며 “비례대표는 소수약자를 대변하기 위해 있는 것인데 약사회와 한국노총이 소수약자인가”라고 비판했다.
장애인들에게 지방선거는 총선이나 대선보다 중요하다. 장애인 관련 정책 대부분이 지방정부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강 후보 역시 시민단체들의 비판에 공감한다.
그는 “민주당이 높은 지지를 받고 있을 때야말로 소수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이런 분위기에서는 사회적 격차를 줄이는 게 어렵지 않다”며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민주당이 편한 길을 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강 후보는 당선권이 아닌 탓에 선거캠프도 꾸리지 않았다.
그는 당사자가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두고 “장애인 관련 예산은 항상 부족하고 그마저도 부적절하게 사용된다”고 꼬집었다. 비장애인이 보기에는 좋아 보이는 것들이 실제 장애인에게는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령 자립을 지원한다면서 복지관을 번지르르하게 짓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자립과 복지관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
강 후보는 “이런 부적절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참여가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하지만 장애인의 정치참여는 아직도 멀다.
피선거권은 물론이고 투표권 행사도 쉽지 않다.
시각장애인인 입장에서 투표용지 칸은 턱없이 작고 제대로 도장이 찍혔는지도 알 수 없다.
또 지방선거는 장애인과 더욱 직접적 관련이 있음에도 토론회나 공보물 등 정보는 턱없이 부족하다.
강 후보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장애인 당사자의 정치참여를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요구가 부족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