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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시민의 윤택한 삶, 강윤택이 만듭니다!

서울시 지부장 기호 4번 강윤택을 지지합니다

장용전 2018.01.28 13:15 조회 수 : 247

릴레이 지지발언 28번째 장용전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8년 6개월 간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한 정보활용지원팀의 팀장 장용전입니다.
지지발언에 앞서 아래 내용들은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과는 아무런 상관성이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또한 장용전은 2018년 1월 31일부로 퇴사하였음을 밝혀드립니다.
33기 서울맹학교 동문의 친구로써 옆에서 늘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컴퓨터프로그램 언어인 gw-basic를 함께 배운 적이 있습니다. 당시는 서울맹학교에 중학생으로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서먹서먹하고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겠죠?
저는 컴퓨터가 없었고 처음 배우기까지 했으니 그런 점이 못내 안타까웠나 봅니다. 수업내용을 정리함은 물론 기초적인 컴퓨터에 대한 내용을 작성하여 저를 도우려 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건 도우려 했다는 것이지 실제 도운 바는 없습니다. 왜냐구요? 한번 계속 보시면 이유를 압니다.
작성만 했지, 저에게 전달을 안했거든요.
그런데 컴퓨터를 갖고 어느정도 실력이 만들어졌을 때쯤, 약 1년 정도가 지나서였을까요? 미처 저에게 전달하지 못한 편지 형태의 컴퓨터노트를 발견하게 됩니다.
복사할 파일이 있었는데 직접 가져가라고 해서 그의 컴퓨터를 보게 되면서 말입니다.
컴퓨터교육을 함에 있어 이렇게 만들어진 교재들이 중요하구나 진짜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유용하겠구나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컴퓨터교육의 교재에 혼신을 다하는 습성 중 한
가지가 이 때 만들어진거 같습니다.
동시에 조금더 강윤택과 가까워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의문입니다. 왜 저에게 주지 않았을까요?
친구라 제가 아주 잘 알아서 드리는 말씀이온데 이녀석 지가 써놓고 그냥 잊어버린 겁니다. 뭔가 어수룩합니다. 그래도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지금껏 녀석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일보에서 주최하는 4복음서 쓰기 대회를 함께 나갔습니다. 점자판을 이용하여 전체 내용을 한 달이 못되는 일자에 써야 했으므로 밤낮없이 매진했습니다.
사실 이 친구는 그 대회를 나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함께 해준 겁니다. 그 대회를 통해 저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고 한 글자도 틀리지 않기 위한 노력을 통해 현재 부업무로
자리매김한 점역교정의 양심을 배웠습니다.
가정내 형편이 안좋았던 저는 학원 근처도 못 가보았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기본영어를 배우러 학교에서도 멀고 새벽 첫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서울역 소재의 학원을 다니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공부 잘 하는 윤택이랑 함께 하면 오케이 사인을 항상 주셨거든요. 그래서 학원을 처음 다녀봤습니다.
서울맹학교 학생회장을 하며 연중행사는 물론 기본급식의 학교식단까지 많은 변화를 일으켰고 그 역시 지켜보며 도우며 함께 했습니다.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공주대학교에 입학해 3개월쯤 지난 어느 날, 찾아온 그는 많이 지쳐 있었고 힘들어 하였습니다.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대학교에 가서 문득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동아리 활동도 자유롭지 않았고 학습형태도 말이지요.
시각장애인이라 안된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힘들지만 한번 해보자는 말에 기대를 품었으나 그냥 방치됨에 또한번 상처 입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1년여는 아파하고 힘들어 했는데 어느 순간 미소를 되찾더니 또 어느 순간 그는 과대표를 맡고 있었습니다.
2003년 졸업을 하고 여주 라파엘의 집에 입사했다고 찾아온 그는 익살스럽게 말했습니다. 직장인데 용돈을 준다고요. 65만원이면 당시 안마를 하고 있던 저에게도 그에게도 분명
용돈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이 보기좋다고 합니다. 무엇을 해줄지 늘 걱정이라고 합니다.
오카리나교육을 제안하자 흔쾌히 응답하여 당시 오카리나반을 만들었고 불가능이라 생각했던 라파엘 밴드를 만들어냅니다.
양손이 안되면 파트를 나누어 두 사람이 건반 하나의 파트를 연주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발상은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2006년 위헌사태를 맞아 안마권 보장을 위한 전국시각장애인천년연합에서 함께 활동하였고 그는 또 익살스럽게 말합니다. 나 짤릴지도 모른다고! 그래도 할일은 해야 하지 않냐며.
그런데 그는 지금껏 안마와는 상관없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의 근간이 시각장애인이고 후배와 선배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안마권이 중요하다고 그것은 해야 할 일이니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서울맹학교 점거농성 중 강제진압을 당할 때 깨진 유리파편에 손바닥이 찢어지면서도 함께 외쳤던 구호들이 생생합니다. 닭장차에 실려가면서도 가족에게는 연락하지 못했던 당시 일들이
생생합니다.
2012년 11월 말 경이었습니다. 제발좀 한번 놀러오라고. 밥 한번 먹자고. 아 평소 안그러던 녀석이 왜그러나 했습니다. 가보니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였습니다.
덩그마니 앉은 사무실은 셔터문이었고 바람이 숭숭 파고들었고 책상 2개, 책꽂이 2개, 난로 1대 그게 다였습니다. 거기에 사람 둘이 앉아 있으니 이게 참 뭔가 스산하고 외로운
느낌마저 드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이게 이놈이 항상 분기별로 왜 고생을 이렇게도 사서 하나? 정말 온전한 정신인가 싶었습니다. 아니 처자식도 있는데 말입니다.
뭐 먹을래 하면 항상 자장면을 외치던 그와 중국집 음식을 시켜놓고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시간이 주어졌으니 이 터전을 바탕으로 무슨 일을 해서
시각장애인들의 삶에 도움을 줄까가 이야기의 전부였던거 같습니다.
보유자산 0원, 지원금 0원으로 출발하여 자리를 채우는 것 이상으로 아무것도 없던 오히려 본인의 사재를 털어 마련한 사무실이 현재는 20억 규모의 사업을 운영하는 거대한 센터가
되었습니다. 불과 4년만의 일이었습니다.
짧은 지면으로는 그와 함께 한 세월과 재미있엇던 일들을 모두 나열할 수 없습니다. 강윤택 스스로도 본인이 이런거까지 했었나 싶을 거라 생각합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멋진 문장이 아닌가 합니다.
그는 늘 나와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했습니다. 안내견을 거부하는 식당, 시각장애인을 거부하는 볼링장, 용산추락보상금투쟁, 성남시복지콜사태 등은 물론 정책을 제안하는 일과 장애인연대를
구축하는 일 등 그럼에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지 않았습니다.
늘 낮은 자리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을 개발하고 끊임없이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내면에는 시각장애인을 사랑하는 애맹정신이 있습니다.
그런 그도 마음 아팠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라파엘에 근무할 때는 보장된 월급이 있어서 아이 손을 잡고 마트에 가면 먹고 싶은 과자를 마음껏 사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동작 자산 0원일 당시에는 월급도 없었고 발전단계에서는 자신의 월급을 자부담으로 전환하여 사업을 했기 때문에 아이와 마트 가는 것이 두려웠다고 합니다.
엄마한테 사달라고 해 그 한 마디가 참으로 무거웠다고 합니다.
2017년 4월 강윤택이 또 한번의 미친짓을 해보겠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그건 정말 꿈틀거림도 못되는 작은 떨림도 못되는 잡히지 않는 서울시지부장선거 그리고 지부장 출마였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것을 본인도 잘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이니 한다고 합니다. 변화는 지금이 아니면 힘들다고 합니다. 사이드에서 수많은 노력을 이렇게 했다
저렇게도 해봤다 하면서 피를 토하는 그는 이젠 정말 이 방법밖에 없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강윤택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제시하는 공약 및 기본적 가치 그리고 생각이 틀렸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러나 어떠한 계보, 그리고 친분, 소속된 기관의 외압에 상관없이 저 강윥택을 봐주십시오. 무조건 표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제 생각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리고 강윤택을 지지하는 장용전이 말합니다.
이놈은 정말 믿을만한 녀석이라고, 늘 낮은 곳에서 함께 하며 남들 다 중요하다 말들 하지만 실제 제대로 못하는 그 소통의 천재라고.
선거에 살포되는 금품은 결국 유권자들의 권리를 저당잡혀 받는 대출에 지나지 않습니다. 매우 이자가 비싼 대출입니다.
개인적으로 받으시는 손난로, 핫팩, 핸드크림 등등의 책임을 지시게 될겁니다.
계보장 이상의 권력으로 당길 수 있는 표를 약속하고 받는 수백 만원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지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안될 거니까 찍지 않는다고요. 그럴 필요가 없는 죽은 표를 왜 만드냐고요? 그러니 적당히 어느 후보를 찍으라고요. 그래서 4번은 찍지말라고요.
여러분, 유권자 개인은 하나의 표를 소중하게 쓸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자유로울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금권으로 혹은 계보로 그것을 누르고, 생각할 그리고 지지할 권리를
포기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그게 진짜 안되는 겁니다.
안되니까 하지 않는다는 발상은 다시말해 시각장애인이니 먹지도 말고 자지도 말고 싸지도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비약이 지나치겠으나 시각장애인이 되면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생겨납니다. 안되는걸 그렇다고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받은 금품으로 과연 할 수 있는 일이 생겨나겠습니까?
안되는 것을 평등한 위치에서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제일 잘할 사람 강윤택입니다.
지금껏 못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줄 그리고 함께 고민할 후보 강윤택입니다.
자산 0원에서 출발하여 시각장애인들의 삶에 20억을 4년만에 만들어낸 강윤택입니다.
안된다고 하고 안될 거라 했던 노무현, 문재인을 만들었듯 강윤택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리고 지켜주십시오. 역량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미 함께 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선거를 만들기 위해 당일 식사 역시 유권자들이 모으고 있습니다. 강윤택 선거캠프의 사람들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밥은 먹고들 다니시냐구요. 십시일반, 스스로들 해결하기도
하고 함께 먹기도 한다 합니다. 금품없이도 선거는 출마 및 당일식사 비용으로 이미 삼천만원 이상이 들어갑니다. 소문으로만 들려오는 이전 선거에서는 이억을 썼다 삼억을 썼다 말들이
많습니다.
이 폐단, 악습 끊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스쳐지나듯 제가 뵈었고 앞으로 제가 모실 많은 시각장애 어르신, 선배, 동료, 후배 여러분! 장용전이 믿고 지지하는 후보 강윤택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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